
패디 로이 베이츠(Paddy Roy Bates)는
시랜드 공국의 창업군주인 초대 시랜드 공(公, Prince)이다.
시랜드 공 로이 전하 HRH Prince Roy of Sealand |
| 1대 시랜드 공 |
| 왕조 | 베이츠 공가 |
| 본명 | 패디 로이 베이츠 |
| 배우자 | 조안 공비 |
| 생몰년 | 1921년 8월 21일 ~ 2012년 10월 9일 |
| 재위기간 | 1967년 9월 2일 ~ 2012년 10월 9일 |
패디 로이 베이츠는 1921년 8월 21일에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영국 육군에 복무하였고, 육군 소령까지 올랐으며 여러 차례 부상을 입기도 했으나 무사히 퇴역하였다. 1949년에 조안 콜린스와 결혼하였고, 군에서 은퇴한 후 그는 잠시 어업에 종사하였다가 1965년부터 무허가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였다. 당시 그가 운영하던 방송국 이름은 라디오 에식스(Radio Essex)였는데, 영국 정부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해상 요새로 눈을 돌리게 된다.
아내 조안의 생일이었던 1967년 9월 2일, 그는 가족을 이끌고 2차 대전중에 영국 해군이 서퍽 근해에 건조한 인공섬이자 해상요새인
러프 요새를 점거하고
초소형국민체인 시랜드 공국의 건국을 선포하였다. 사실 처음에는 단순히 라디오 방송을 하기 위해 점거한 것이었으나, "내 땅에서 내가 나라 세우겠다는데 누가 뭐라 하겠어?"라는 배짱으로 아예 독립 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그는 스스로 초대 시랜드 공에 올라 자신을 시랜드 공 로이 전하(His Royal Highness Prince Roy of Sealand)로 칭하였다.
영국은 베이츠 일가를
러프 요새에서 퇴거시키기 위해 해군을 파견하였으나 베이츠 일가가 화염병과 총으로 격렬하게 저항하여 물러났다. 약 1년 2개월 후인 1968년 11월 25일에 영국 법원은 시랜드 공국이 영국의 영해에 속하지 않았다고 판결하였다.
(1) 이 판결은 시랜드가 "우리는 영국으로부터 사법적 승인을 받은 독립국이다"라고 주장하는 강력한 근거가 되었다.
1999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기 시작하여 당시 공세자였던 아들
마이클 베이츠를 섭정 공세자로 세우고 영국 레이온시(Leigh-on-Sea)의 요양원에서 요양하였다. 2012년 10월 9일, 그는 오랜 투병 끝에 결국 서거하였다. 시랜드 공국의 왕위는 아들 마이클 베이츠가 승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