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혁명과 러시아 내전을 거쳐 러시아 제국이 무너지고 세계 최초의 공산국가인 소련이 탄생하였다. 이오시프 스탈린의 공업화를 거쳐 세계 2위의 경제 규모를 달성하기도 했으나, 독소전쟁의 발발로 폭삭 무너져버렸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후 다시금 경제를 회복시키면서 1950년대에는 최초의 인공위성을, 1961년에는 최초의 우주비행사가 탄생하는 등 미국과 경쟁하는 국가로 우뚝 섰다.
그러나 1991년 보리스 옐친 등의 정치인들에 의해 소련이 붕괴되면서 러시아 연방으로 탄생하였다. 해체 이후 러시아는 인구나 경제 등 여러 면에서 소련의 위상을 되찾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러우 전쟁의 전개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19세기 조선은 청일전쟁 이후 일본과의 세력 균형을 위해 제정 러시아를 이용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냉전시대가 지속되면서 우호관계가 없었으나, 1990년 고르바초프의 개혁 정책으로 인해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러시아와 한국 간의 관계가 개선되기 시작했다. 1990년 9월 30일 외교관계를 수립하였으며, 12월 14일에는 여러 협정(3)을 체결하였다.
1994년 김영삼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해 양국 간 건설적이고 상호 보완적인 동반자 관계를 선언했다. 1995년 8월엔 러시아가 북`러 군사동맹조약을 연장하지 않을 것을 선언하고 1996년 9월 10일 조약이 폐기되기도 했다. 당시 한국과 러시아의 교역량은 1995년 기준 33억 1천만 달러로, 1990년에 비해 3.7배 증가하였다.
그러나 1996년 4월 한반도 문제에 관련 논의에서 러시아의 참여를 배제한 4자회담을 제창하자 관계가 냉각되기 시작했다. 이런 관계는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계속 약화, 악화었다가, 1999년 5월 김대중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을 계기로 다시 우호적인 협력 관계가 복원되었다. 이후 푸틴 대통령의 남북 화해와 협력을 지지하고 실용주의적 경제 협력 외교를 전개하면서 실질적인 동반자 관계가 구축되기도 했다. 또한 2004년 9월 노무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은 양국 간의 관계를 더욱 돈독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1) 참고로 2위는 캐나다이며, 소련 시절에는 이보다 큰 22,400,000 km²였다.(2) 덕분에 국토 양끝의 시차가 11시간에 달한다.(3) '대한민국 정부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정부간의 과학 및 기술협력에 관한 협정,' '대한민국 정부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정부간의 무역협정,' '대한민국 정부와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 정부간의 투자의 증진 및 상호보호에 관한 협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