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경제학자, 정치인. 가인 김병로 선생의 손자이며, 독일 유학파 경제학자 출신으로 서강학파의 일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경제민주화의 상징적 인물로, 현행 헌법의 119조 2항이 그의 주도로 만들어졌다.
한국 정치사에서 전무후무한 비례대표(구 전국구)로만 5선을 기록한 국회의원이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위기에 처한 정당의 구원투수(비상대책위원장)로 영입되어 선거를 승리로 이끄는 능력이 탁월하여, 여의도 차르나 킹메이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194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중앙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외국어대학의 독일어과에 진학했다. 졸업 후
독일로 유학
(2)가서 뮌스터대학교에서 경제학 석/박사를 수료한 뒤 귀국하여 서강대학교에서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9년엔 쾰른 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재직하기도 했다.
1980년대부터 정치에 입문하여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1대, 제12대 국회의원이 되었다. 1987년 헌법 개정 당시, 기초소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여 헌법 제119조 2항을 관철시켰다. 이는 재벌 개혁과 경제 민주화의 헌법적 근거가 되었다.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서울 관악구 을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낙선 후 국민은행 이사장으로 취임했다가 제24대 보건사회부 장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을 역임하며 토지공개념 도입, 재벌 비업무용 부동산 매각 등의 정책을 주도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든 대한발전전략연구원의 이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그 뒤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이후 한동안 정치와 거리를 두다가,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의 선거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았고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되었다. 2012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회의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역임하여 대통령 당선에 일조하였다. 그러나 경제민주화 후퇴 논란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결별했다.
# 2016년에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활동하며 당시 분당 사태로 지지율이 폭락하던 민주당을 수습하고, 이해찬, 정청래 등을 컷오프하는 강력한 공천 칼날을 휘두르며 총선 승리(원내 1당 탈환)를 이끌었다. 자신도 비례대표 2번으로 당선되어 5선 고지에 올랐다.
2017년 3월 민주당을 탈당했고, 2020년 제21대 총선 참패로 궤멸 위기에 놓인
미래통합당의 비상대책위원장으로 등판했다. 탄핵의 강을 건너야 한다며 이명박, 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과오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하고, 정강정책에 기본소득을 명시하는 등 당을 쇄신했다. 그 결과 2021년 재보궐선거에서 오세훈, 박형준 후보를 당선시키며 보수 정당 부활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2022년 대선 과정에서는 윤석열 후보 캠프의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으나, 후보와의 갈등 끝에 "연기만 해달라"는 명언(?)을 남기고 해촉되었다. 2024년 제22대 총선에서는
이준석 대표가 이끄는 개혁신당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합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