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하오징아오(濠镜澳)라는 이름으로 중국의 지배 아래 있다가 명나라 시절 탐험가인 알바레스 일행이 상륙하면서 포르투갈과 명나라 간의 관문이 되었다.(5) 그 뒤 포르투갈이 건설권 등의 이권을 받아 발전시키면서 동양과 서양을 잇는 관문(6)으로 성장하였고, 이를 탐낸 네덜란드에서 5차례나 침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몬테 요새 등으로 격퇴하면서 발을 붙이진 못했다.
아편전쟁으로 홍콩이 영국에 할양되면서 마카오 또한 포르투갈이 점령하고 이후 위키백과:베이징 조약을 통해 할양받았다. 그렇게 포르투갈의 영토가 되었으나 1955년부터 중국이 영토 반환을 요구했고, 문화대혁명을 거쳐 1970년대부터 자치령이 되었고, 1999년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1) 또는 Macao(2) 과거에는 17.4km2 였으나 간척을 통해 코타이를 만드면서 약 2배로 늘어났다.(3) 대부분이 중국인이고 포르투갈인 등 다른 사람은 소수다. 한국 교민은 수백명 정도다.(4) 워룽은 좀...(5) 이들은 젖은 화물을 말린다는 구실과 중국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어 거주권과 정박권을 획득하였다.(6) 1575년에는 교황청이 해외 관구를 설립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