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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고 공동화 정책
(편집) (5)
(편집 필터 규칙)
1928,2940
== 연고 이전 후 == 서울을 떠난 세 팀, 즉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는 각각 천안, 안양, 부천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새로운 연고지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 안양 LG: 안양 종합운동장은 1년이 넘는 대규모 보수 공사를 거친 후에야 겨우 홈 구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 부천 유공: 아예 전용 경기장이 없어 결국 목동 경기장을 5년 동안 빌려 쓰는 처지가 되었다. * 천안 일화: 홈 구장의 조명탑이 아예 없어 야간 경기가 거의 불가능했으며, 승부를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1990년대 프로 축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황당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 중 일부는 또다시 연고지를 옮기거나 다른 행보를 보였다. * 일화 천마 천안을 떠나 성남으로 다시 연고를 이전하고 성남 일화 천마라는 이름으로 리즈 시절을 누렸다. 하지만 모기업의 종교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비인기 구단 신세를 면치 못했고, 관중 동원은 안습의 극치를 달리며 결국 성남에서도 연고 정착에 실패했다. 이후 성남시가 구단을 인수하여 시민 구단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 유공 코끼리 모기업인 SK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면서, 구단은 부천 SK는 영원합니다라는 말로 팬들을 기만하다가 2006년 새 부천 유니폼까지 완성시킨 상태에서 제주도로 가서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됐다. * LG 치타스 나름 연고 정착에 성공한 모습을 보였고, 수원 삼성 블루윙스와 지지대 더비라는 라이벌전을 형성하며 흥행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후 아예 팬들에게 마음이 떠난 듯, 경기 시작 5분 전에 경기를 취소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거나, 팬들을 상대로 하는 이벤트마저 전혀 진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관중 동원 역시 부천에 이어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결국, 연맹에 75억 원[* 이 75억 원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 건축 비용의 단 0.3%에 불과한 금액이었다. 이로써 연맹이 당초 내걸었던 자비로 축구 경기장 건설 조항마저 사실상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을 건네고 서울로 복귀를 강행하여 FC 서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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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고 이전 후 == 서울을 떠난 세 팀, 즉 일화 천마, LG 치타스, 유공 코끼리는 각각 천안, 안양, 부천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새로운 연고지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 안양 LG: 안양 종합운동장은 1년이 넘는 대규모 보수 공사를 거친 후에야 겨우 홈 구장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 부천 유공: 아예 전용 경기장이 없어 결국 목동 경기장을 5년 동안 빌려 쓰는 처지가 되었다. * 천안 일화: 홈 구장의 조명탑이 아예 없어 야간 경기가 거의 불가능했으며, 승부를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1990년대 프로 축구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황당한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국 이들 중 일부는 또다시 연고지를 옮기거나 다른 행보를 보였다. * 일화 천마 천안을 떠나 성남으로 다시 연고를 이전하고 성남 일화 천마라는 이름으로 리즈 시절을 누렸다. 하지만 모기업의 종교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비인기 구단 신세를 면치 못했고, 관중 동원은 안습의 극치를 달리며 결국 성남에서도 연고 정착에 실패했다. 이후 성남시가 구단을 인수하여 시민 구단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 유공 코끼리 모기업인 SK와의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면서, 구단은 부천 SK는 영원합니다라는 말로 팬들을 기만하다가 2006년 새 부천 유니폼까지 완성시킨 상태에서 제주도로 가서 제주 유나이티드 FC가 됐다. * LG 치타스 나름 연고 정착에 성공한 모습을 보였고, 수원 삼성 블루윙스와 지지대 더비라는 라이벌전을 형성하며 흥행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이후 아예 팬들에게 마음이 떠난 듯, 경기 시작 5분 전에 경기를 취소시키는 만행을 저지르거나, 팬들을 상대로 하는 이벤트마저 전혀 진행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관중 동원 역시 부천에 이어 최악의 수준을 기록했다. 결국, 연맹에 75억 원[* 이 75억 원은 서울 월드컵 경기장 건축 비용의 단 0.3%에 불과한 금액이었다. 이로써 연맹이 당초 내걸었던 자비로 축구 경기장 건설 조항마저 사실상 폐기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을 건네고 서울로 복귀를 강행하여 FC 서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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