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오기) (편집 필터 규칙) 1971년 9월 20일 전라남도의 여천군[* 현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의 섬마을에 거주하던 김익환 씨와 그의 가족들을 중앙정보부의 여수출장소 소속 요원들이 간첩 관련 혐의자로 예단해 연행하여 5일간 감금하고 고문 및 가혹행위를 한 뒤 혐의를 찾지 못하자 은폐 및 협박 후 석방한 사건. 아무런 물증 없이 무고한 민간인을 연행하여 자백을 강요했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고문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한 뒤 풀어주었다. 피해자들은 이후 평생을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과 '간첩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 고통받아야 했다. == 진행 == 월북한 간첩이 있다는 주민의 제보에 1971년 9월 20일과 21일에 걸쳐 당시 중앙정보부 여수출장소로 사용 중이던 여수시청 관사에 김익환 일가[* 김익환(당시 42세) 씨, 제수 강덕례 씨, 조카딸 김정례 씨] 가 영장도 없이 강제 연행되었다. 연행된 후 5일 동안 밀실에서 몽둥이 등으로 폭행 및 구타를 당했고, 모욕과 협박, 가혹행위가 이뤄졌다. 그러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고 진짜 월북자가 잡히자 은폐 및 협박 후 석방하였다. 이 사건으로 생긴 고문 후유증으로 김익환 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조사를 결정,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다. == 외부 ==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0103905?sid=102|"중앙정보부, 71년 무고한 여성 2명 성고문"]]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0136224?sid=102|'간첩 누명' 김익환 씨 '7일간의 고문, 36년간의 악몽']] (임시 저장) (임시 저장 불러오기)기본값모나코 에디터 normalnamumarknamumark_betamacromarkmarkdowncustomraw (↪️) (💎) (🛠️) (추가) 1971년 9월 20일 전라남도의 여천군[* 현 여수시] 화정면 백야리의 섬마을에 거주하던 김익환 씨와 그의 가족들을 중앙정보부의 여수출장소 소속 요원들이 간첩 관련 혐의자로 예단해 연행하여 5일간 감금하고 고문 및 가혹행위를 한 뒤 혐의를 찾지 못하자 은폐 및 협박 후 석방한 사건. 아무런 물증 없이 무고한 민간인을 연행하여 자백을 강요했으나 혐의점을 찾지 못하자, 고문 사실을 발설하지 말라고 협박한 뒤 풀어주었다. 피해자들은 이후 평생을 신체적, 정신적 후유증과 '간첩 가족'이라는 낙인 속에서 고통받아야 했다. == 진행 == 월북한 간첩이 있다는 주민의 제보에 1971년 9월 20일과 21일에 걸쳐 당시 중앙정보부 여수출장소로 사용 중이던 여수시청 관사에 김익환 일가[* 김익환(당시 42세) 씨, 제수 강덕례 씨, 조카딸 김정례 씨] 가 영장도 없이 강제 연행되었다. 연행된 후 5일 동안 밀실에서 몽둥이 등으로 폭행 및 구타를 당했고, 모욕과 협박, 가혹행위가 이뤄졌다. 그러나 혐의를 입증하지 못하고 진짜 월북자가 잡히자 은폐 및 협박 후 석방하였다. 이 사건으로 생긴 고문 후유증으로 김익환 씨를 비롯한 가족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2006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조사를 결정, 진실규명 결정이 내려졌다. == 외부 ==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0103905?sid=102|"중앙정보부, 71년 무고한 여성 2명 성고문"]] *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79/0000136224?sid=102|'간첩 누명' 김익환 씨 '7일간의 고문, 36년간의 악몽']] 비로그인 상태입니다. 편집한 내용을 저장하면 지금 접속한 IP가 기록됩니다. 편집을 전송하면 당신은 이 문서의 기여자로서 본인이 작성한 내용이 CC BY 4.0에 따라 배포되고, 기여한 문서의 하이퍼링크나 URL로 저작자 표시가 충분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전송 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