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출신 북한 정치인으로 북한의 초대 국회의장(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겸 국가수반이었다.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당시, 김일성은 국무총리로서 실권을 장악했고, 김두봉은 국회의장 겸 국가수반이 됐다. 이로서 소련의 영향력 아래 있던 김일성과 중국의 지지를 받는 연안파 출신의 김두봉 사이에서 일종의 권력 균형이 이루어졌다.(1)
그러나 8월 종파 사건으로 김일성의 독재 체제가 공고화되고, 1958년 연안파의 김일성 비판과 쿠데타 소문을 계기로 반당 종파분자로 몰려 숙청되었다.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평양의 한 야산의 탄광에 끌려가 중노동을 하다 생애를 마쳤다 한다.
그가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할때, 1940년 임시정부를 탈퇴하고 화북으로 가서 김무정과 함께 조직한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 출신 연안파가 그의 지지세력이었다.
조선독립동맹은 남한으로 귀국한 백남운에 의해 남조선신민당으로, 북한으로 귀국한 그에게서는 북조선신민당으로 창당되었으나, 남 신민당은 남로당에 흡수되고 북 신민당은 북조선로동당에 흡수되어 조선노동당이 됐다. 이후 조선노동당내 구 조선독립동맹과 조선의용군 출신을 연안파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