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제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호남 기반의 진보 세력 수장인 김대중과 충청 기반의 보수 세력 수장인 김종필이 손을 잡은 사건이다. 이념적으로나 지역적으로나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 같았던 두 거물이 정권 교체라는 공동의 목표를 위해 결성한 전략적 정치 연합이다.
당시 여권 후보였던 이회창이 아들의 병역 비리 의혹으로 흔들리고, 이인제가 신한국당을 탈당해 독자 출마하며 여권 표가 분산되는 천재일우의 기회가 찾아왔다. 여기에 DJP연합이 충청권 표심을 끌어오면서, 김대중 후보가 이회창 후보를 불과 1.53%p(약 39만 표) 차이로 꺾고 당선된다.
국민의 정부 출범 후 약속대로 김종필은 국무총리에 취임했고, 자민련 인사들이 내각에 다수 참여해 공동 정부의 형태를 띠게 되었다. 6.25 전쟁 이후 최초로 야당으로의 평화적 정권 교체가 이루어진 역사적 순간이었다.
연합은 초기 IMF 외환위기 극복이라는 공동의 과제 앞에서는 굳건했으나,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 파열음이 나기 시작했다. 대북 정책, 특히 햇볕정책의 추진 강도와 방식에 대해서 의견 차이가 나타났고,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개헌 추진이 지연되자 자민련 내부에서는 불만과 갈등이 증폭되었다. 1999년 내각제 개헌이 유보되자 자민련측에선 내분이 일었으며 양당 사이의 골은 깊어졌고 통합, 합당 논의도 좌절됐다. 결국 2001년 9월, 한나라당이 제출한 임동원 통일부 장관 해임건의안에 자민련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DJP 연합은 사실상 파기되었다.
긍정적 평가로는 수평적 정권교체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으며, 호남과 충청의 결합을 통해 기존의 영남 중심 정치 구도에 변화를 주었으며, 이념이 다른 두 세력이 힘을 합쳐 IMF라는 국가적 경제 위기를 빠르게 수습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받는다.
그러나 이념과 정체성이 다른 세력이 권력 확보를 위해 결합했다는 점에서 야합 논란 및 비판이 제기됐으며, 연립 구조로 인해 주요 정책에서 당·정 간 의견이 자주 충돌하며 정책 결정 과정이 복잡해지고, 국정 운영의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지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