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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an Domingo Perón, 1895년 10월 8일 ~ 1974년 7월 1일

후안 페론(Juan Perón)은 아르헨티나의 군인, 정치인이다. 아르헨티나 대통령을 2번(29대, 39대) 역임했으나, 동시에 아르헨티나를 선진국 문턱에서 주저앉힌 포퓰리스트라는 비판과 노동자의 아버지라는 찬사를 동시에 받는 인물이다.

목차

1. 개요
2. 경제
3. 영상

1. 개요

1943년 군인 출신인 페론은 쿠데타를 시도한 후 노동부 장관으로 재직하며 노동자들의 환심을 샀다. 부통령직에도 올랐다가 군부 내 견제로 구금되었으나 민중들의 대규모 시위(충성의 날)로 풀려났고, 1946년 대선에 출마하자 53%의 득표율로 당선되었다.

그는 철도, 통신 등 주요 기간산업 회사들을 국영화 시키고 친노동 정책을 추진했다. 이를 페론주의(Peronism)라고 부른다. 그러나 1952년 정치적 파트너이자 정신적 지주였던 부인 에바가 자궁경부암으로 죽고 무리한 복지 지출로 인한 인플레이션, 가뭄 등이 겹치며 모든 개혁이 동력을 잃었다. 설상가상으로 가톨릭 교회와 척을 지면서 야당 인사들과 언론에 의해 집중공세를 받았다.(1)

1955년 9월, 군부에 의해 쿠데타가 발생한 후 파라과이, 파나마 등을 전전하는 망명 생활을 하면서 이사벨을 만나 재혼 했다.

망명 생활을 하다가 18년 만에 아르헨티나로 다시 돌아온 그는 자신의 대리인인 엑토르 캄포라가 당선된 후 사임하자, 1973년 9월 대선에서 승리해 대통령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 하지만 이미 고령이었던 그는 건강 악화로 제대로 국정을 수행하지 못하다가 1974년 7월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부통령이었던 이사벨이 대통령직을 승계했다. 그러나 그녀는 세계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무능력했고, 결국 76년 3월 호르헤 비델라가 이끄는 군부에 의해 축출당했다.

2. 경제

한국에서 페론주의 때문에 아르헨티나 경제가 파탄 난 것으로 잘못 아는데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페론 집권기에 방만한 재정 운용으로 인플레이션을 키운 원죄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아르헨티나 경제의 결정적인 몰락은 사실 페론주의자를 자처한 페론당 소속인 카를로스 메넴(Carlos Saul Menem)이 추진한 신자유주의 정책 탓이 크다.(2) 즉, 우파에서는 "페론이 복지병을 퍼트려서 망했다"고 까고, 좌파에서는 "메넴이 신자유주의로 팔아먹어서 망했다"고 서로 탓을 하는 형국이다. 아이러니한 건 페론과 메넴 둘 다 페론당 소속이라는 점.

3.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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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여담으로 에바 본인은 페론에게 암 진단 사실을 숨겼지만 건강이 나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2) 참고로 아르헨티나는 카를로스 메넴 정권 시기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면서 다른 나라에게 모범 사례가 되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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