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집 何戢 |
| 출생 | 446년 |
| 사망 | 482년 (향년 36세) |
| 자 | 혜경(慧景) |
| 출신 | 여강군 잠현 |
| 소속 | 유송 → 남제 |
| 가족 | 증조부: 하상지(何尚之) 아버지: 허옌(何偃) 배우자: 유초옥(산음공주, 전처) 자녀: 하언, 하정영(何婧英)(1) |
중국 남북조시대 유송의 관료이자 부마. 명문가인 여강 하씨 출신으로, 당대 최고의 미남으로 꼽혔으나 하필이면 역사에 길이 남을 음란한 공주인 산음공주 유초옥의 남편이 되면서 고통받은 인물이다.
유송의 명문가인 여강 하씨 집안에서 태어났다. 증조부 하상지는 유송의 개국 공신급 원로였다. 이러한 배경 덕분에 효무제의 딸이자 전폐제 유자업의 누나인 유초옥, 산옥공주의 부마도위(남편)으로 간택되게 된다. 문제는 아내 산음공주가 중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색녀(色女)였다는 점이다. 어느 날 산음공주가 황제인 동생 유자업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한다.
폐하와 나는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남매인데, 폐하는 육궁(六宮)에 미녀를 수만 명이나 거느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나는 부마가 오직 한 명뿐이니, 이는 너무 불공평합니다
이 말을 들은 유자업은 누나를 위해 30명의 미남을 뽑아 선물로 하사했다. 이를 면수(面首)라고 부른다.
(2) 이후 멀쩡히 살아있는 남편 하집을 두고 30명의 남자 첩을 거느렸다. 하집 입장에서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호스트바를 차린 셈. 당시 사대부로서의 자존심이 짓밟혔겠지만, 황제의 누나이자 황제 등 뒤에 숨은 권력자였기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465년 유자업이 암살당하고 숙부인 유욱 명제가 즉위한 뒤, 풍기문란과 패악질을 이유로 조카인 산음공주에게 자결을 명했다. 보통 이런 경우 남편도 연좌제로 처벌받기 마련이지만, 당시 사람들도 하집이 불쌍한 피해자라는 것을 알았는지 그는 처벌받지 않았다. 이후 유송이 멸망하고 남제가 들어선 뒤에도 관직 생활을 계속했으며, 482년에 36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했다. 사후 그의 딸 하정영(何婧英)은 남제 울림왕의 황후가 되었으나, 울림왕 역시 폐위됐고 하정영 또한 남색을 밝히는 모습을 보여주어 하집의 가계도 순탄치만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