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민중의 사회주의 혁명에 대한 지배계급의 두려움으로 인한 반동(이탈리아) 혹은 사회주의 혁명의 진압에 따른 노동자-민중의 뒤틀린 분노표출(독일) 등의 원인이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는 붉은 2년 동안 검은 셔츠단에 의한 진압과 국왕의 무솔리니 총리 임명으로 파쇼화 되었다. 독일같은 경우는 독일 11월 혁명에서 로자 룩셈부르크가 주도하는 스파르타쿠스단의 반란을 프리드리히 에베르트와 우익들이 진압하자, 사회주의자들의 기반 붕괴와 노동자민중의 뒤틀린 분노가 나치 정권을 창출했다. 실제로 1923년 뮌헨 폭동이 발생한 바이에른 지역은 불과 4년 전까지만해도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이라는 공산주의 정권이 세워져있던 지역이었다.
또한 파시즘은 그 당시 보수주의의 반지성주의적 표출이라고 볼 수 있는데, 팽창주의, 반공주의적 면모를 고스란히 계승하고있었다. 예컨대 보수당의 거두 처칠은 파시즘과 일맥상통하는 사상과 성격을 지니고있었으며(1), 20년대에는 무솔리니의 붉은 2년에서의 사회주의 세력의 진압을 극찬하며 반공주의의 모델로 삼기도하였다.
20세기 전반까지는 파시즘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운동으로만 해석했지만 신좌파가 대두가 되면서 파시즘의 의미가 확장되었다. 특히 빌헬름 라이히가 정의한 파시즘이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는데 그는 파시즘을 "성적 억압으로 인해 대중들의 사도마조히즘적 심리에서 유래된 비합리적 사상"이라고 정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