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혁명으로 국민주의(Nationalism)과 민족주의(Ethnicism)이 탄생했고 당시 유럽 내에 유대인들은 이에 영향을 받아 시오니즘을 창시하게 되었다. 시오니즘의 창시자인 테오도어 헤르츨은 무신론자였지만 자신의 부모가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를 유대인이라고 정의했다.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에게 로비를 벌여왔으며 19세기 말에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치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자행하자 유대인 사이에서 시오니스트들이 급증했으며 이는 이스라엘 탄생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 초기 시오니스트들은 대개 좌파성향이었지만 1967년에 6일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이 미국에게 인정받으면서 점차 우경화가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일반인들이 잘 알고 있는 시오니즘 분파이다. 우파 시오니즘이라고 하며 팔레스타인인들과 무슬림을 배제하고 친미성향을 지녔다. 1948년부터 자행해온 팔레스타인인 학살과 차별의 주범이고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을 주도하는 분파이다. 이들이 미국과 결탁하여 우파 시오니즘을 퍼트렸으며 시오니즘의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안 좋아지게 만들었다.
유대교근본주의자들과 달리 성소수자, 여성 인권을 내세우지만 이는 이스라엘이 다른 아랍 국가들에 비해 민주주의 국가로 위장하는 전술에 불과하다. 네타냐후 정부가 퀴어 축제를 후원했는데 이는 핑크워싱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실제로 볼셰비스트와 시오니스트들은 서로 대립했고 일부 우파 시오니스트들이 나치 독일과 결탁하여 볼셰비스트를 없애달라고 로비를 벌였을 정도이다. 그리고 당시 볼셰비스트들은 시오니즘을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불온사상으로 간주했으며 지금도 사회주의자들은 시오니즘 자체를 절대악으로 간주하고 있다.(1)
19세기 이전에 당시 유럽인들에게 통용되던 유대인 개념은 원래 유대교를 믿는 집단을 의미했다. 시오니스트들은 민족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유대인을 혈연적 개념인 동시엔 종교적 개념으로 간주했으며 이는 후기에 나치스트들이 유대인을 인종개념으로 간주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시오니스트들은 히브리어를 모어로 사용하지 않은 유럽인들에게 과거 혈연적 조상이 유대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유대인으로 간주하고 있고 생전에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에게도 유대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카를 마르크스와 레프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본인은 생전에 자신을 유대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지만 시오니스트들의 로비때문에 이들은 사후에 유대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을 유대인으로 만드는 것은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세력을 유리하게 만드는 행태이고 이는 탈민족주의자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