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오니즘은 19세기 초(1)에 시작된 유대인의 민족주의 운동이다. 시오니즘이란 명칭은 예루살렘의 언덕인 시온(Zion)에서 유래하였다. 본래는 유대인의 고향인 팔레스타인 땅으로 귀환하여 유대인 국가를 건설하려는 운동을 의미했으나, 현재는 이스라엘 국가의 존재와 정책을 옹호하거나 반대하는 복합적인 정치적 담론으로 확장되었다.
프랑스 혁명으로 유럽 전역에 국민주의와 민족주의가 확산되면서 유대인들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정체성을 고민하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시오니즘이 태동했다. 시오니즘의 창시자인 테오도어 헤르츨은 무신론자이면서도 스스로를 세속적인 유대인으로 정의했던 인물로, 당시 유럽 내의 반유대주의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만의 국가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유대인의 국가(Der Judenstaat)를 출간했다.
시오니스트들은 유대인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 영국, 프랑스, 독일에게 로비를 벌여왔으며 19세기 말부터 팔레스타인으로 유대인들이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나치 독일이 홀로코스트를 자행하자 전 세계 유대인 사회에서 시오니즘의 필요성이 급격히 대두되었으며, 이는 1948년 이스라엘 국가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스라엘 초기 시오니스트들은 대개 좌파성향이었지만 1967년에 6일 전쟁 이후에 이스라엘이 미국에게 인정받으면서 점차 우경화가 되어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시오니즘 분파이다. 우파 시오니즘이라고 하며 팔레스타인인들과 무슬림을 배제하고 친미성향을 지녔다. 비판 측의 주장에 따르면 1948년부터 자행해온 팔레스타인인 학살과 차별의 주범이고 1970년대부터 이스라엘을 주도하는 분파이다. 이들이 미국과 결탁하여 우파 시오니즘을 퍼트렸으며 시오니즘의 이미지가 국제적으로 안 좋아지게 만들었다.
유대교근본주의자들과 달리 성소수자, 여성 인권을 내세우지만 이는 이스라엘이 다른 아랍 국가들에 비해 민주주의 국가로 위장하는 전술에 불과하다. 네타냐후 정부가 퀴어 축제를 후원했는데 이는 핑크워싱이라고 비난받고 있다.
실제 역사에서 볼셰비스트와 시오니스트들은 서로 대립했고 일부 우파 시오니스트들이 나치 독일과 결탁하여 볼셰비스트를 없애달라고 로비를 벌였을 정도이다. 그리고 당시 볼셰비스트들은 시오니즘을 노동자를 분열시키는 불온사상으로 간주했으며 오늘날에도 일부 급진적 사회주의 진영은 시오니즘 자체를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본다.(2)
19세기 이전에 당시 유럽인들에게 통용되던 유대인 개념은 원래 유대교를 믿는 집단을 의미했다. 시오니스트들은 민족주의 사상의 영향으로 유대인을 혈연적 개념인 동시엔 종교적 개념으로 간주했으며 이는 후기에 나치스트들이 유대인을 인종개념으로 간주한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래서 이런 정의의 확장은 현대의 탈민족주의자나 인류학자들에게서 "인종주의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시오니스트들은 히브리어를 모어로 사용하지 않은 유럽인들에게 과거 혈연적 조상이 유대교를 믿었다는 이유로 유대인으로 간주하고 있고 생전에 유대교로 개종한 사람에게도 유대인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예를 들면 카를 마르크스와 레프 트로츠키, 로자 룩셈부르크 본인은 생전에 자신을 유대인으로 정체화하지 않았으나, 시오니스트들의 로비때문에 이들은 사후에 유대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을 유대인으로 만드는 것은 반유대주의를 조장하고 있는 세력을 유리하게 만드는 행태이고 이는 탈민족주의자의 비판 대상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