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6 산시 대지진 嘉靖大地震(1), 华县大地震(2) / 1556 Shaanxi earthquake |
| 발생 일시 | 1556년 1월 23일 (명나라 가정 34년 12월 12일) |
| 발생 지점 | 명나라 산시성 화현 |
| 규모 | 리히터 규모 8.0 ~ 8.3 추정 |
| 인명 피해 | 사망자 약 830,000명(3)(4)(5) |
| 영향 범위 | 반경 약 800km 이상 |
1556년 1월 23일 명나라 가정제 시기 중국 산시성 일대를 덮친 초대형 지진. 지진이 일어난 장소에서 유래한 화현대지진이나, 당시 연호인 가정을 따서 가정대지진이라고도 불린다.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지진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해서 진앙지 인근의 모든 건축물은 형체도 없이 사라졌고, 대지가 수십 미터 높이로 솟구치거나 수십 미터 깊이로 꺼졌으며, 새로운 강이 생겨나고 기존의 강줄기가 바뀌었다.
당나라 때부터 내려온 수많은 비석이 보존된 시안의 비림도 이때 큰 피해를 보았다. 근데 불행 중 다행으로 일부 비석들이 땅속에 파묻히는 바람에 후대의 전란을 피하고 보존되었다는 역설적인 이야기도 있다.
지진의 규모도 컸지만 유독 사망자 수가 많았던 이유는 다른 몇 가지도 있었다. 당시 산시성 주민들은 황토 고원의 특성을 이용해 절벽에 굴을 파서 만든 집인 야오둥(窑洞)에 거주했는데, 지진이 발생하자 이 수많은 인공 동굴들이 그대로 무너져 내려 주민들을 생매장했다. 더군다나 지진이 발생했던 시간이 한겨울 새벽이었기에, 추위를 피해 모두가 야오둥 깊숙이 들어가 잠든 시간이었기에 대피는커녕 눈도 못 뜨고 변을 당했다. 사실상 집이 거대한 무덤이 된 셈.
지형적 특성으로도 산시성 일대는 부드러운 황토층이 두껍게 쌓인 지역이라 지진파가 증폭되었고, 대규모 산사태와 지반 액상화 현상이 동시에 일어났던 것도 있다.
3. 역사적 영향 ✎ ⊖
당시 황제였던 가정제는 도교에 빠져 정사를 돌보지 않기로 유명했는데, 이 대지진은 그의 통치 권위에 치명타를 입혔다. 유교적 관점에서 천재지변은 황제의 부덕 소치로 여겨졌기 때문.
대지진 이후 명나라는 복구 작업에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어야 했으며, 이는 가뜩이나 북로남왜로 고통받던 명나라의 국력을 쇠퇴시키는 한 원인이 되었다. 또한, 이후 중국의 건축 양식은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무거운 돌보다는 목재를 적극 활용하는 방향으로 더욱 발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