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왕족이자 군인, 정치가. 최종 계급은 해군 원수이며,
당시 연합군 동남아시아 사령부(SEAC) 사령관, 인도의 마지막 총독을 역임했다. 빅토리아 여왕의 외증손자이며, 엘리자베스 2세의 남편인 필립 마운트배튼의 외삼촌이다. 가문은 마운트배튼 가문이나, 마운트배튼 가문은 본디 여러 왕가와 혈연이 닿아있어 그리스, 스웨덴, 독일(공가)
, 영국 왕가와도 혈연적으로 가까운 집안이다.
1900년 6월 25일, 윈저 성의 프로그모어 하우스에서 바텐베르크 공자 루트비히와 헤센의 빅토리아 공녀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의 이름은 '바텐베르크의 루이스 공자 전하(His Serene Highness Prince Louis of Battenberg)'였다.
에드워드 8세와 친했다고 한다. 서로 노는걸 좋아 했다고. 에드워드 8세에 비해 덩치도 크고 얼굴형 덕에 에드워드 보다 왕의 풍채에 더 가깝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어린 시절에도 웨일스 공과 놀다가, 노년기에는 경험이 없어 혼란스러워 하던 현 웨일스 공 찰스의 멘토를 해주며 할아버지와 손자처럼 지냈다고 한다.
아버지는 초대 밀포드 헤이븐 후작이자 바텐베르크 공자인 루트비히와, 어머니인 헤센 대공녀 빅토리아인데, 루트비히의 아버지 부터가 헤센 대공가의 일원이었다가 평민출신 백작과 사랑에 빠져서 야반도주(?)를 감행했다가 작위를 다 빼앗기자
(6) 형제들이 늘그막에 그래도 가족이다보니 바텐베르크 공국의 대공으로 봉해주어 나온 가문이 바로 바텐베르크 가문이다.
그리고 아내인 빅토리아 또한 헤센 대공녀 출신인데다가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였다. 이모는 로마노프 황가의 황후와 대공비, 또 누나들은 각각 스웨덴 왕비, 그리스 왕자빈이었다.
(7) 그러니까 대충 반물질 수저 정도 된다고 보면 된다.
이 가문에서 처음 태어났을 때엔 바텐베르크 공자 전하 루이로 불리었는데, 태어난지 얼마 안되어 세계 1차대전이 발발해버린다. 근데 성씨나 혈통이 독일식인 바텐베르크 였고, 설상 가상으로 영국 왕 조차 작센-코부르크-고타 왕가였기에, 독일 제국과 독일 출신 왕가가 싸우는 괴상한 구도가 되어버려서 당시 왕 조지 5세는 이름을 왕실 성인 윈저로 바꾸고, 다른 귀족들 성도 갈아치우게 했다. 이 때 바텐베르크 가문은 바텐베르크를 직역한 마운트배튼으로 성을 바꾸고, 독일계 작위도 모두 포기해버려서 일시적으로 그냥 '루이 씨'가 되어버렸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다시 작위를 받고 마운트배튼 공(Lord Mountbatten)으로 불리었다. 그런데 러시아로 시집간 여동생 때문에 아버지인 루트비히는 러시아에 투자를 하게 되었는데, 러시아 혁명으로 여동생은 물론, 처제들까지 혁명군에 살해당한데다가 러시아에 투자한 자본은 순식간에 종이쪼가리로 변했고, 독일의 자산들도 독일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쫄딱 망해버려서 가문의 성까지 내다팔고 영국의 저택도 매각하는 등 재정적으로 어려움을 겪다 질병으로 병사한다. 루이는 병사한 아버지 처럼 군인이 되기 위해 영국군에 입대하게 되었고, 구축함 HMS 켈리의 함장이 되었다.
이 때, 영국이 독일의 유보트 공세로 물자공급이 어려워져 난감해 했는데, 상당히 개혁적인 시선을 가졌던 루이가 발명가들을 후원해 문제의 해결방법을 촉구했었다. 그 중 하나가 '하박국(하버쿡)'으로, 바다로 오는 물자가 격침되서 철을 제대로 수급하지 못하니, 아예 얼음으로 배를 만들자는 아이디어였다. 유보트가 상선을 공격하기 전에 공기를 채우러 부상해있던 유보트 함대를 항공기로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는데, 철이 없어서 항모를 만들 수가 없었으니까. 이 때 '제프리 파이크'라는 발명가가, 자신이 발명한 방법을 이용, 펄프소재를 얼음에 섞으면 엄청 단단해지고 거의 녹지 않았기에 이걸로 배를 엄청 크게 만들면 싼 값에 전력 확보가 가능하다고 주장했고, 이걸 본 루이가 적극 후원해 직접 관계자들을 모아두고 제프리의 신소재를 총으로 쏴갈기면서 프로젝트를 추진하자고 표명했다. 근데 시험용으로 작게 만들어서 띄워보니까 얼음이다 보니 배처럼 뜨는게 아니라 표면만 드러나게 둥둥 떠서 그냥 접었다고.
켈리에서 근무하던 도중, 교전에 들어가 켈리가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격침되어 수병 대부분이 사망하고, 루이도 겨우겨우 건져져 살아남았다. 근데 함상에서의 지휘도 영 시원찮았고 켈리도 격침되어 영국은 그를 일본군과 맞서싸울 총사령관으로 임명해 인도에 주둔하며 일본군과 겨루게 되었다. 이 때 연방군을 통솔하여 빼앗긴 영토를 다시 탈환하는 등 활약을 보였다고 한다. 일본과의 전쟁이 끝난 뒤에는 인도 제국 총독으로 부임했고, 인도인들의 독립 요구에 따라 독립을 시켜주기로 결정한다. 구 영국 식민지들에 있어 호의적이었던 인물로, 독립을 별로 싫어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인도가 독립할 시 힌두교도냐 회교도냐를 두고 힌두교도들이 주도하는 독립을 지지하며 파키스탄이 자기들도 독립하겠다고 하자, 일부러 인도에게 유리한 조건으로 독립을 하도록 했다고 한다. 전쟁과 독립 이후엔 영국으로 돌아와 버마 자작으로 봉해졌다가, 그 이후 백작으로 승격되며 버마 백작이 되었다.
에드위나 신디아 아네트 애쉴리(Edwina Cynthia Annette Ashley)라는 마운트 템플 남작의 장녀와 결혼했다. 이 때 루이의 들러리를 에드워드 8세가 서주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