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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kota War of 1862

서부 개척 시기인 1862년 원주민 샌티 수우족미국 사이에 벌어진 전쟁이다.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이라는 전대미문의 내전을 치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부에서 벌어진 이 원주민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정규군을 파견해야 했을 정도로 격렬했던 충돌이었다.

목차

1. 배경
2. 전개

1. 배경

1850년대부터 서부 골드 러시로 인해 미네소타 주 지역에 소위 '개척자'들이 몰려들었다. 1858년 미네소타가 미국의 주로 승격되면서 백인 정착민들의 유입은 더욱 가속화되었고, 이는 원주민들의 생존권에 대한 직접적인 위협이 되었다.

그로부터 불과 20년 전인 1830년 체로키 족 등의 남부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경력을 쌓아 대통령이 된 앤드류 잭슨은, 그렇게 많이 죽였는데도 아직 남아있는 남부 인디언들을 완전하게 몰아내기 위해 서경95도 선을 영구적인 인디언 경계선으로 만드는 법을 통과시킨 상태였는데, 이것은 원래 미시시피 강을 경계로 하려다 개척자들이 이미 미시시피 강 서쪽을 점령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자 좀 더 서쪽으로 변경한 것이었다.

므듀칸톤 족 추장인 작은까마귀와 와비샤는 미국 동부의 여러 도시를 둘러보고는 싸움이 안된다고 판단하여 백인들과의 충돌을 피하려고 하였고, 1851년과 1858년 각각 백인들과 조약을 맺고는 자기 부족들에게 백인들의 생활방식을 받아들이게 하려고 애를 썼다. 그 결과 샌티족은 1860년경에는 차지하던 강역의 90%를 빼앗기고 미네소타 강 유역의 작은 땅에 몰려 살았다.

2. 전개

미국인들은 땅을 빼앗은 것도 모자라 샌티족 영역 근처에서 샌티족이 땅을 포기한 대가로 받기로 한 연금을 사기쳐서 빼돌렸고, 원주민들의 사냥감인 야생 조수들의 씨를 말렸으며, 원주민들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동을 거리끼지 않았다. 그 와중에 농사까지 잘 되지 않자, 1862년 원주민들은 연금으로 구입하기로 한 식량이 있는 주재소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당시 미국은 남북전쟁(1861~1865)중이어서 원주민들에게 줄 연금이 도착하지 않았다. 북부 정부의 재정이 전쟁 비용으로 탕진되면서 금 대신 가치가 떨어진 지폐로 연금을 지급하려 하거나, 아예 지급이 지연되는 일이 부지기수였다.

주재소의 상인들은 연금 없이는 식량을 주지 않겠다며 버텼으며, 그 중 머릭이라는 사람은 '배고프면 풀이나 자기 똥이나 먹으라지'라고 소리쳤고 이 말이 곧 원주민들의 마지막 인내심을 바닥냈다. 나중에 전쟁이 터진 후 머릭은 죽은 채로 발견되었는데, 분노한 원주민들이 그의 입안에 풀을 가득 채워 놓았다고 한다. 그야말로 인과응보의 끝판왕.

작은까마귀는 상술한 조약에 서명한 후에는 양복을 빼입고 성공회 신자가 되어 농사를 짓고 평화롭게 살려고 노력했지만, 상황이 이렇게 되자 더는 분노한 자신의 부족민들을 통제할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원주민 전사 일부가 사냥을 나갔다가 백인 정착민들의 집을 습격하여 정착민들을 살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백인들의 보복이 두려웠고 그간 쌓인 울분이 폭발한 작은까마귀는 대규모 유혈사태를 일으켰다. 그는 다른 샌티족 부족들과 연합하여 800여명의 전사들을 이끌고 뉴올름을 공격했지만 시블리 대령(1)이 이끄는 1400명의 미군이 당도하자 성공하지 못했으며 전황은 불리하게 돌아갔다.

그러자 샌티 족들은 협상이냐 전쟁이냐의 기로에서 분열하여 주전파인 작은까마귀, 샤코페, 마술병 등은 자기 지파 사람들을 이끌고 캐나다로 도주하였고 이전부터 시블리와 내통하고 있던 와비샤와 폴 마자쿠테마네 등의 온건파는 항복하였다. 그러나 약속 어기기를 밥먹듯 하는 '개척자'들은 이들을 그냥 놔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이들은 남아있던 2천 명 가량의 샌티족 전부를 포로 취급 하였으며, 추장과 전사들 중 303명에게 사형을 언도하였다. 사형 대상자 수가 너무 많은 것을 수상하게 여긴 대통령 링컨에 의해 사형이 집행된 인원은 38명으로 줄었지만, 미국 당국은 샌티족 남성 대부분을 형무소로 보냈고 남은 이들은 척박한 크로우 크리크 수용소로 보냈다. 이들 중 첫 겨울이 지난 후 살아남은 사람은 천명도 되지 않았다. 미국 의회는 1863년 다코타족과의 모든 조약을 무효화하고 그들을 미네소타 주 밖으로 영구히 추방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 편, 캐나다로 도망간 주전파들도 무사하지는 못했다. 영국 당국은 이들을 직접적으로 공격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환대하지도 않았다. 그 다음 해인 1863년 작은까마귀는 말을 구하러 캐나다 영역을 벗어났다가 백인 개척자들에게 발각되어 죽었다. 그를 죽인 백인은 보상금을 받았고, 작은까마귀의 시신은 훼손되어 전시되는 수모를 겪었다.

샤코페와 마술병은 캐나다 국경까지 쫓아 온 시블리의 사주를 받은 미국인 존 메켄지에 의해 사로잡혀 미국으로 이송되어 교수형당했다. 이렇게 샌티 수우족은 멸망하였다. 비록 이 시기에 샌티 수우족은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으나, 이들의 저항 정신은 이후 리틀 빅혼 전투 등으로 이어지는 '대수우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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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11~1891, 초대 미네소타 주지사. 이 사람은 앞서 원주민들의 연금을 사기쳐 빼돌린 사람 중 한 명이었고, 미네소타 주지사인 알렉산더 램지와 유착관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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