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조부: 구형왕 (금관가야 마지막 왕) 여동생: 문명왕후 (태종 무열왕의 비) 매제: 태종 무열왕 (김춘추)
신라의 군인, 정치인. 신라의 삼국통일을 이끈 주역으로, 멸망한 금관가야 왕족의 후손이라는 출신 성분의 한계를 딛고 진골 귀족 편입을 넘어 신라 최고의 권력자에 올랐으며 삼국통일전쟁에서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고 나당전쟁에 참전하여 통일신라를 건국하는 데 일조하였다.
젊은 시절 화랑으로 활동하며 낭비성 전투 등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유명한 일화로 기생 천관녀와의 로맨스와 말 목 자르기(…)가 있다. 이후 폐위된 진지왕의 손자인 김춘추와 연대하여 정치적 동반자가 되었고, 여동생(문명왕후)도 시집보낸 일화는 유명하다.
비담의 난을 진압한 뒤 삼국통일 전쟁에서 황산벌에서 계백을 격파하고 당나라군과 사비성을 함락시켜 백제를 멸망시킨 뒤, 고령의 나이에도 총사령관으로서 고구려와의 전쟁을 지휘해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태종 무열왕 즉위 후엔 원로로 국정을 자문하며 나당 전쟁에도 참전했으나 전쟁 도중인 673년 향년 79세로 사망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이 당시의 상황과 김유신의 나이, 그리고 역할을 간과한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실제로 백제 멸망(660년) 당시 김유신의 나이는 66세였고, 고구려 멸망(668년) 때는 74세였다. 당시 평균 수명을 고려하면 전장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인 초고령으로, 직접 전장에 나서지 않았다고 비판하는 것은 무리다. 또한 그는 야전 사령관이 아니라 국가의 군권을 총괄하는 총사령관(대각간)이었다.
그리고 쌀 배달 작전은 험준한 지형과 혹한, 고구려군의 기습을 뚫고 성공시킨 고난도 미션이었다. 이를 성공시킨 덕분에 당나라군은 전멸을 면하고 철수할 수 있었다. 병법에서 보급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황산벌 전투 또한 계백의 저항이 거셌던 것은 사실이나, 김유신은 결국 사기 진작책(화랑의 희생)을 통해 전세를 뒤집고, 기일 내에 당나라군과 합류하는 전략적 목표를 달성했다.
더군다나 삼국통일은 단순한 전투의 승리가 아니라 외교와 내정이 결합된 총력전이었다. 가야계 수장인 김유신이 신라 왕실과 결합하여 내부 결속을 다졌기에 전쟁 수행이 가능했다는 시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