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후궁인 공빈 김씨의 소생이었기에 왕위 계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형인 임해군의 패악이 극심하였던데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가 의주로 파천하기 직전에 급하게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때 광해군의 활약은 눈부셨다. 평양에서 선조와 조정을 둘로 나누어 전란으로 쑥대밭이 된 강원도, 함경도, 전라도 일대를 직접 발로 뛰며 민심을 수습하고 의병을 독려했다. 이 시기의 광해군은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조선이 전란을 극복하는 데 막대한 공을 세웠다.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폐위되었다. 폐위 후 반포된 교서에 따르면 봉산옥사, 계축옥사, 폐모살제와 같은 만행으로 무고한 사람을 해치고, 과도한 토목공사를 행했으며, 재조지은을 무시하고 중립외교를 행한 것 등이 실정으로 꼽혔다. 실제로 한 학자가 교서를 분석하기도 했다.(1) 인조의 즉위 교서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