光海君

조선의 제15대 임금. 임진왜란이라는 초유의 국난 속에서 분조를 이끌며 위기의 조선을 지탱한 구국의 영웅이었으나, 즉위 후에는 극심한 의심암귀에 빠져 각종 옥사를 일으키고 무리한 토목공사를 강행하다 결국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비운의 암군이다.

한국사에서 가장 극단적인 평가가 교차하는 인물 중 하나로, 한때 시대를 앞서간 실리외교의 달인으로 추앙받기도 했으나 현대에 들어서는 외교적 감각은 있었으나 내치에서 완전히 실패한 폭군이라는 비판적 재평가 역시 만만치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목차

1.
2. 반정
3. 영상

1.

선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후궁인 공빈 김씨의 소생이었기에 왕위 계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나 형인 임해군의 패악이 극심하였던데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가 의주로 파천하기 직전에 급하게 왕세자로 책봉되었다.

이때 광해군의 활약은 눈부셨다. 평양에서 선조와 조정을 둘로 나누어 전란으로 쑥대밭이 된 강원도, 함경도, 전라도 일대를 직접 발로 뛰며 민심을 수습하고 의병을 독려했다. 이 시기의 광해군은 백성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으며, 조선이 전란을 극복하는 데 막대한 공을 세웠다.

2. 반정

1623년 인조반정이 일어나면서 폐위되었다. 폐위 후 반포된 교서에 따르면 봉산옥사, 계축옥사, 폐모살제와 같은 만행으로 무고한 사람을 해치고, 과도한 토목공사를 행했으며, 재조지은을 무시하고 중립외교를 행한 것 등이 실정으로 꼽혔다. 실제로 한 학자가 교서를 분석하기도 했다.(1) 인조의 즉위 교서도 있다. #

3. 영상

(1) 계승범, 〈계해정변(인조반정)의 명분과 그 인식의 변화〉, 《남명학연구》 제26권, 2008, 450-4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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