Гео́ргий Константи́нович Жу́ков / Georgy Konstantinovich Zhukov, 1896년 12월 1일 ~ 1974년 6월 18일
소련의 군인.
의 독소전쟁에서 활약한 명장으로 평가받는다. 최종 계급은 소비에트 연방의 원수이며,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4회나 수훈받았다. 사실상 나치 독일을 멸망시킨 일등 공신 중 한 명으로, 러시아에서는 승리의 원수(Маршал Победы)라고 불린다.
1896년 칼루가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에는 모피 세공 도제 일을 하며 어렵게 살았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징집되어 참전, 기병으로 복무하며 훈장을 수여받았다. 이때의 활약으로 성 게오르기 훈장을 두 번이나 받으며 군사적 재능을 드러냈다.
1918년 붉은 군대에 입대했고, 1919년 러시아 공산당에 입당했다. 군인으로 복무하며 승진하여 연대장, 군단장, 상급대장, 참모총장을 거쳐 1943년에 원수가 되었다. 독소전쟁 발발 전인 1939년, 할힌골 전투에서 일본 관동군을 상대로 기계화 부대를 운용해 괴멸적인 타격을 입히며 명성을 떨쳤다. 이 전투의 승리로 일본은 북진론을 포기하게 되었고, 소련은 양면 전쟁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소련군을 이끌며 독소전쟁에서 활약하였다. 개전 초기 독일군의 파죽지세에 소련군이 녹아내릴 때, 스탈린은 위기 상황마다 주코프를 소방수로 투입했다.
- 레닌그라드 포위전: 함락 직전의 레닌그라드에서 방어선을 구축해 독일군을 저지했다.
- 모스크바 공방전: 수도가 함락될 위기에서 지휘하여 모스크바를 방어했다.
- 스탈린그라드 전투: 천왕성 작전을 실행하여 독일 제6군을 포위 섬멸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 베를린 공방전: 최선임 지휘관으로서 베를린 점령을 지휘했고, 독일의 카이텔 원수로부터 항복 문서를 받아냈다.
1945년 6월 24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열린 승전 기념 퍼레이드에서 백마를 타고 사열을 받았다. 원래 스탈린이 타려 했으나 말이 낙마시키는 바람에(…) 기병 출신인 주코프가 대신 탔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러나 종전 후엔 그의 위상과 자만이 아니꼬웠던 스탈린에 의해 좌천되었다. 스탈린은 전쟁 영웅인 주코프가 자신의 권력을 위협할까 봐 두려워했고, 전리품 약탈/불법 반입 등을 구실로 주코프를 오데사 군관구 사령관 등 한직으로 쫓아냈다.
1953년 스탈린이 죽자 니키타 흐루쇼프와 손잡고 비밀경찰 수장인 라브렌티 베리야를 체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군부를 장악한 주코프가 있었기에 가능한 쿠데타였다. 이후 국방차관, 국방장관 자리에 올랐으며 당 중앙위 간부도 되었다. 그러나 흐루쇼프에 의해 다시금 공직에서 추방되었다. 흐루쇼프 역시 주코프의 권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경계하여 그를 해임했다.
흐루쇼프 실각 후 브레즈네프에 의해 복권되었다. 복권 후엔 특별한 활동 없이 말년에 회고록 추억과 성찰을 집필하며 지냈고, 장례는 국장으로 치러져 크렘린 벽 묘지에 안장되었다.
코카콜라를 매우 좋아했다. 하지만 냉전 시기 미 제국주의의 상징인 코카콜라를 대놓고 마실 수 없어서, 미군 사령관 아이젠하워에게 부탁해 색소를 뺀 투명한 코카콜라
(1)를 특수 제작해 보드카 병에 담아 마셨다고 한다. 뚜껑도 붉은 별이 그려진 흰색 뚜껑을 썼다고.
전술적으로는 뛰어났으나 병사들의 인명 경시 풍조가 있었다는 비판도 있다. 인터넷에서 알려진 지뢰밭 돌파 방법이라든가… 다만 서방 측의 과장이라는 반론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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