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일어난 비폭력 시민 혁명. 이를 통해 41년간 지속된 공산당의 일당 독재 체제가 무너지고 민주화가 이뤄졌으며, 바츨라프 하벨이 대통령이 되었다.
이름인 벨벳은 시위 진압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은 있었으나, 대규모 유혈 사태나 무력 충돌 없이 비교적 부드럽게(Velvet) 정권 이양이 이루어졌다고 하여 벨벳 혁명이라는 우아한 이름이 붙었다.(1) 같은 시기 옆 동네 루마니아 혁명이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부부를 처형하며 피바다를 이뤘던 것과는 대조적인, 동유럽 민주화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혁명의 도화선은 11월 17일 국제 학생의 날 50주년 기념행사였다. 합법적으로 허가된 이 행사는 곧 반정부 시위로 바뀌었다. 경찰은 이를 강경 진압했는데, 이 과정에서 수학과 학생 마르틴 슈미트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경찰이 학생을 죽였다!"는 소문은 체코슬로바키아 전역을 분노로 들끓게 했다.
11월 19일, 극작가이자 반체제 인사인 바츨라프 하벨을 중심으로 시민 포럼(Občanské fórum)이 결성되었다. 이들은 공산당 정권 퇴진과 정치범 석방 등을 요구하며 조직적인 시위를 주도했다. 수도 프라하의 바츨라프 광장에는 연일 수십만 명의 시민이 모여 "하벨을 성으로!(Havel na hrad!)"를 외쳤다.
12월 10일, 구스타프 후사크 대통령이 사임하고 비공산당원이 다수 포함된 내각이 출범했다. 12월 29일, 연방 의회는 만장일치로 바츨라프 하벨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극작가가 대통령이 되는 드라마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이끌었다가 실각했던 알렉산데르 둡체크도 연방 의회 의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