官渡戰鬪, 官渡之战, 官渡大戰 / Battle of Guandu [[중국]] 후한 시대(200년)에 있었던 전투. 관도대전이라고도 하며, 당시 화북의 2대 세력이었던 원소와 [[조조]]가 대결했다. 이 전투에서 조조가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화북 평정의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했고, 원소 가문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삼국 시대의 3대 전투(대전)[* 나머지는 [[적벽대전]]과 이릉대전]로 불린다. 전투 자체는 관도 외에서도 여럿 벌어졌지만, 핵심 장소이자 전투가 관도에서 벌어졌기에 관도전투라 일컫는다. 백마 전투로 시작되었으며, 병력 상으로는 원소가 유리했으나 오소 습격을 결정타로 조조의 승리로 끝났다. 그래서 대표적인 이소격다[* 以少擊多,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격파함]의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 전개 == === 백마·연진 전투 === 원소군의 선봉장 안량이 조조군의 동군태수 유연이 지키던 백마를 포위하자, 조조는 순유의 계책을 받아들여 황하를 건너 원소의 배후를 치는 척 성동격서 작전을 펼쳤다. 원소가 속아 본대를 분산시킨 사이 조조는 경기병을 이끌고 백마를 기습했으며, 이때 조조 휘하에 임시로 가담해 있던 [[관우]]가 안량을 참수하여 포위를 풀었다. 이어지는 연진 전투에서는 조조군이 수송대를 미끼로 던져 원소군을 방심하게 만든 뒤, 기습을 가해 원소의 맹장 문추마저 전사시켰다. == 동영상 == [youtube(n9Z_334d3ns)] 정사의 관도전투를 다룬 동영상. == 트리비아 == 낭중취물과 만전지책이라는 사자성어가 이 전투에서 유래되었다. 전자의 경우 정확히는 [[관우]]가 [[조조]]에게 [[장비]]를 칭찬하며 했던 말이다. (임시 저장) (임시 저장 불러오기) 기본값 모나코 에디터 normalnamumarknamumark_betamacromarkmarkdowncustomraw ↪️💎🛠️ (추가) 官渡戰鬪, 官渡之战, 官渡大戰 / Battle of Guandu [[중국]] 후한 시대(200년)에 있었던 전투. 관도대전이라고도 하며, 당시 화북의 2대 세력이었던 원소와 [[조조]]가 대결했다. 이 전투에서 조조가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화북 평정의 결정적인 기틀을 마련했고, 원소 가문은 멸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중국]]에서는 삼국 시대의 3대 전투(대전)[* 나머지는 [[적벽대전]]과 이릉대전]로 불린다. 전투 자체는 관도 외에서도 여럿 벌어졌지만, 핵심 장소이자 전투가 관도에서 벌어졌기에 관도전투라 일컫는다. 백마 전투로 시작되었으며, 병력 상으로는 원소가 유리했으나 오소 습격을 결정타로 조조의 승리로 끝났다. 그래서 대표적인 이소격다[* 以少擊多, 적은 병력으로 많은 병력을 격파함]의 사례로 거론되기도 한다. == 전개 == === 백마·연진 전투 === 원소군의 선봉장 안량이 조조군의 동군태수 유연이 지키던 백마를 포위하자, 조조는 순유의 계책을 받아들여 황하를 건너 원소의 배후를 치는 척 성동격서 작전을 펼쳤다. 원소가 속아 본대를 분산시킨 사이 조조는 경기병을 이끌고 백마를 기습했으며, 이때 조조 휘하에 임시로 가담해 있던 [[관우]]가 안량을 참수하여 포위를 풀었다. 이어지는 연진 전투에서는 조조군이 수송대를 미끼로 던져 원소군을 방심하게 만든 뒤, 기습을 가해 원소의 맹장 문추마저 전사시켰다. == 동영상 == [youtube(n9Z_334d3ns)] 정사의 관도전투를 다룬 동영상. == 트리비아 == 낭중취물과 만전지책이라는 사자성어가 이 전투에서 유래되었다. 전자의 경우 정확히는 [[관우]]가 [[조조]]에게 [[장비]]를 칭찬하며 했던 말이다. 비로그인 상태입니다. 편집한 내용을 저장하면 지금 접속한 IP가 기록됩니다. 편집을 전송하면 당신은 이 문서의 기여자로서 본인이 작성한 내용이 CC BY 4.0에 따라 배포되고, 기여한 문서의 하이퍼링크나 URL로 저작자 표시가 충분하다는 것에 동의하는 것입니다. 전송 미리보기